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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 삶이 되다
권순인·이구범 부부
권순인·이구범 부부의 봉사는 거창한 결심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아이들이 자란 뒤 생긴 여유 속에서,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조금씩 떠올리며 이어진 발걸음이었다.
1999년 우성원 봉사를 시작으로 점자도서관 봉사,
그리고 2009년 숙명점역봉사단 창단까지 이들의 봉사는 현장에서 마주한 불편함을 그냥 넘기지 않는 선택의 연속이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릴까
올해 1월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 인사회에서 권순인·이구범 부부가 국민추천포상 대통령표창을 수상했다.
두사람은 1999년 우성원의 발달장애인들을 위한 눈높이 교육을 시작으로,
시각장애인 학습지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점자 도서 제작과 입력 봉사를 이어왔다.
2009년에는 전국 맹학교에 점자 교재를 보내기 위한 숙명점역봉사단을 창단했으며 두 사람은 현재까지 30,000시간이 넘는 봉사기록을 쌓아왔다.
이 긴 여정의 출발점은, 한 권의 책을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다는 문제의식이었다.
전환점은 2006년, 권순인 씨가 점자도서관에서 점자 입력 봉사를 시작하면서 찾아왔다.
컴퓨터 앞에 앉아 책을 입력하는 작업은 집에서도 할 수 있었지만, 현장의 현실은 답답했다.
권순인 씨는 당시를 떠올리며 “왜 이렇게 오래 걸릴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라고 말하며
“점자도서관에서 다루는 책들은 주로 소설이나 에세이 같은 장서들이었고,
학생들이 당장 써야 하는 교과서나 학습도서는 늘 뒤로 밀려 있었죠. 책 한 권을 맡기면 6개월,
길게는 9개월이 지나서야 받아볼 수 있다는 이야기도 흔했고요.
교과서가 바뀌는 학년이 되면, 그 책은 아예 쓸 수 없게 되는 경우도 많았어요”라고 전했다.
교사였던 두 사람은 이 구조를 자연스럽게 질문하게 됐다.
이렇게까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지, 현장의 속도를 조금이라도 줄일 방법은 없는지 고민이 이어졌다.
이구범씨는 “조금만 빨라져도 아이들한테는 큰 차이가 되겠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다 떠올린 해법이 책을 통째로 맡기는 대신 분책해 여러 사람이 나눠 입력하고,
이를 빠르게 취합하여 교정하는 방식이었다. 두 사람의 고민은 그렇게 구체적인 실행으로 이어졌다.
2009년, 숙명여대 학생들과 동문들이 참여한 숙명점역봉사단이 만들어진 배경이다.
봉사자 한 명이 몇 페이지씩 맡아 2~3일 안에 입력하면, 일주일 내로 점자 파일이 완성됐다.
이후 두 사람은 전국 맹학교를 찾아다니며, 학교마다 점자 교재를 전달할 때 연락을 맡을 교사들을 만나 소통했다.
“자료는 이메일로 보내고, 시험을 앞둔 시기에는 전과나 자습서, 평가문제집을 먼저 전달하려고 했습니다.
이렇게 하다 보니 이 방식이 점자책을 만드는 현장 전반으로도 자연스럽게 퍼지게 됐어요.”


봉사가 일상이 되기까지
숙명점역봉사단은 점자 입력을 시작으로 다양한 분야로 봉사를 넓혀갔다.
봉사자들이 시각장애인을 직접 만날 수 있도록 ‘셰이크 핸즈 데이’를 열고, 음악회와 진로 프로그램,
1박 2일 캠프를 이어갔다.
막연히 ‘불편할 것’이라 생각했던 장애에 대한 인식은, 장애인들과 일상을 함께 보내며 달라졌다.
지금도 이구범 씨는 하루 평균 세 시간 이상 컴퓨터 앞에 앉아 수학 점역 작업을 이어간다.
그래프와 도표를 말로 옮기는 과정에는 특히 많은 공이 들어간다. 권순인 씨는 수학이외의
일반교재를 중심으로, 주변 지인들과 함께 어떻게 하면 더 나은 봉사를 할 수 있을지를 꾸준히 고민한다.
두 사람에게 봉사는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다.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고, 반갑게 불러주는 이름이 있는 일상이다.
봉사는 그렇게 이들의 일상이 됐다. 거창하지 않지만 멈추지 않는 선택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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