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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인문학
정성을 들여 새로운 시간을 맞이했던 정월의 풍경

2019-12-27

새로운 한 해의 시작인 설날은 다가올 시간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뒤섞인 채 시작된다. 떡국을 먹으며 덕담을 주고받는 것도 새날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주는 우리만의 액막이였을지도 모른다. 차례를 통해 조상의 힘을 빌어 그 한 해를 잘 부탁했던 것도, 아무 힘이 없을 것 같은 복조리를 걸었던 행위도 올해만큼은 부정 타는 일 없이 모두가 흥하기만을 바랐던 조상들의 가장 순수한 마음의 발현이었을 것이다. 자연 앞에 약한 인간이기에 기대보다는 자식 걱정, 농사 걱정 등 걱정거리가 더 많았던 그 옛날 우리 조상들. 그들의 진심을 담은 다양한 정월 풍속들을 살펴본다.

 

진은주

 

 

 

안택고사
정월 또는 시월에 집안을 돌봐주는 여러 신령에게 가정의 평안을 축원하는 의례를 안택고사라고 한다. 고사를 지낼 때는 떡을 찌고 간단하게 음식을 장만해서 성주와 터주에게 정성을 들인다. 가신들이 위치한 곳에 음식을 차리고 1년 동안 액운을 쫓아 집안이 평안하기를 바랐던 어미니들의 간절한 바람은 매서운 정월의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안택굿은 주로 충청도 및 호남 지역을 비롯해 전승되던 대표적인 가정의례였다. 그러나 1970년대 새마을운동의 시작되면서 일련의 미신타파 운동과 산업화의 물결에 밀려 대부분 중단되었다.

 

 

 

복조리
섣달 그믐날이면 복조리 장사가 마을에 와서 집 울안으로 복조리를 던져 놓고 나중에 돈을 받으 러 온다. 정초 열흘이 지나서 돈을 받으러 오면 값을 얼마를 부르든지 거절하지 않고 복조리 값을 줬던 게 그때의 인심이다. 복조리는 두 개씩 묶은 채로 안방에 걸어두는데 조리 안에 돈을 넣기도 하고 곡식을 넣기도 한다. 곡식을 넣어둘 때는 헝겊으로 만든 주머니에 곡식을 넣어서 복조리에 얹어 놓는다. 돈을 두는 것이 부자가 되기를 바라는 세속적인 마음이라면 곡식을 넣어두는 것은 한 해 농사가 잘 되기를 기원하는 농부의 간절한 마음이다.

 

삼재막이

삼재는 출생한 해를 십이지로 따져서 불운이 드는 해로 9년 주기로 돌아온다. 9년 주기로 돌아온 이 삼재는 3년 동안 머무르게 되는데 그 첫 해가 들삼재, 둘째 해가 묵삼재 또는 눌삼재, 셋째 해가 날삼재라 하여 그 재난의 정도가 점점 희박해진다고 했다. 특히 삼재가 드는 첫 해에는 매우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삼재 때 꼭 나쁜 일만 생기는 것이 아니다. 좋은 일이 생길 수도 있는데, 이를 ‘복삼재’라고 한다. 사·유·축(巳·酉·丑) 생은 삼재가 해(亥)년에 들어와 축(丑)년에 나가고, 신·자·진(申·子·辰) 생은 인(寅)년에 들어와 진(辰)년에 나가고 해·묘·미(亥·卯·未) 생은 사(巳)년에 들어와 미(未)년에 나가며, 인·오·술(寅·午·戌) 생은 신(申)년에 들어와서 술(戌)년에 나간다. 삼재가 있는 사람은 부적을 쓰거나 만신이 삼재막이를 하여 액운을 피했는데, 액막이는 정월 초, 정월 14일, 입춘 등에 행했다. 대개 무당이나 절을 찾아가 삼재경(三災經) 등을 읽거나 삼재막이 굿을 행함으로써 액막이를 하고 부적을 받아온다. 부적은 머리가 세 개 달린 매나 호랑이가 그려진 것으로, 특히 머리 세 개인 매가 그려진 것은 <동국세시기>에도 기록되어 있어 19세기 이전부터 활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민간에서는 삼재가 낀 사람의 속옷을 태우는 방식이 널리 전승되어 왔다. 또한 삼재에 걸린 사람의 이름과 사주 그리고 약간의 돈을 넣은 허수아비를 거리에 갖다 버리는 것도 많이 전승되었다.

 

제웅치기

개인의 액운을 막기 위해서 제웅을 만들어 냇가나 삼거리에 버렸다. 정초나 정월 14일, 정월보름 등에 행해졌는데, 짚으로 사람 모양을 만들어 동전을 끼워 넣고 갖다 버렸다. 또한 운이 나쁜 아이가 있으면 허수아비를 만들어 종이나 헝겊으로 그 머리를 씌우고 그 위에 얼굴을 그려 사람 형상을 만들었다. 허수아비 몸에 액막이할 아이의 동정이나 이름, 생년월일을 적은 쪽지를 넣고 도랑이나 개천에 버렸다. 이때 무당이 와서 굿을 하기도 했다. 액을 함부로 가져가는 사람은 없지만 동네 아이들이 몰려다니며 제웅을 찾아서 돈을 빼내고 땅에 힘껏 내동댕이치면서 놀았다고 한다. 이것을 ‘제웅치기[打芻戱]’라고 한다.

 

12지일

정월 초하루부터 12일 간을 12지가 상징하는 동물의 날로 정하며, 유모일(有毛日)과 무모일(無毛日)로 나누어 그에 따른 세시풍속이 행해졌다. 뱀날(巳日)은 우물에서 물을 길어오지 않았다. 또한 용날(辰日)에 물을 퍼오면 농사철에 일하려고날을 잡았을 때 비가 온다고 해서 물을 긷지 않았다. 정월 말날(午日)에는 장을 담았는데 집안에 좋지 않은 일이 생길 때는 이 날을 피해서 담갔다. 만일 이날 동네 어르신의 초상이 나면 역시 장을 담지 못했다. 이렇게 2월 장을 못 담그면 3월 삼짇날 담아야 했다. 우리 조상들은 집안에 좋지 않은 일이 있거나 아픈 환자가 있으면 장맛이 변한다고 했다. 장은 한 해 집안의 양식이기 때문에 날을 가리고 조심하여 성심껏 담았다.

 

걸립

걸립은 본래 불교에서 불사를 위해 자금이 필요할 때 걸립승(乞粒僧)이 민가를 돌면서 경문이나 염불을 외고 곡식이나 돈을 기부받았던 것이다. 이러한 풍속을 민간에서 받아들여 필요한 공공 자금이나 단체의 재원을 마련할 목적으로 풍물패를 조직하게 되었다. 걸립은 주로 정초에 마을의 풍물패가 각 가정을 돌면서 마당밟이(지신밟기, 매구)를 해주고 돈과 곡식을 걷어 마을 기금으로 사용했다. 때로는 다른 마을까지 돌면서 할 때도 있었다. 걸립은 마을을 위해 자금이 필요할 때 이를 마련하는 하나의 방법이었지만, 정초에는 액막이 기능을 하는 것으로 믿고 풍 물굿도 해주고 그 대가를 받았다. 이때 각 가정이 동일한 금액이나 곡식을 내는 것이 아니라 생활 형편이나 정성에 따라 그 양과 액수가 달랐다.

 

2020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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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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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2024.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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