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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기행
하남의 오랜 역사가 담긴 상사창동

2019-12-27

서쪽에 덕풍천이 흐르고 남쪽에는 남한산성이 자리하고 있는 상사창동은 도립공원이 있어 자연경관이 뛰어나며 지역 유산이 잘 보존되어 있다. 법화골·샘골·중터골 등 아름답고 고즈넉한 마을들이 자리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때 이 지역에 세미(稅米)를 보관하던 창고가 있어 사창(司倉)이란 지명이 생겼고, 사창리의 윗마을이라 하여 상사창(上司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하남의 지난 날들을 조용히 간직하고 있는 상사창동의 골목으로 떠나보자.

 

김혜윤 / 사진 봉재석

 


 

 

 

영원한연자마
연자마는 방아틀에 연결된 돌을 말과 소가 끌면 그 힘으로 돌아가는 기구다. 곡물 껍데기를 벗기거나 밀을 빻을 수 있게 만든 물건으로, 농촌에서 널리 사용되던 농기구다. 다른 말로는 ‘연자매’, ‘돌매방아’라고도 한다. 판판하고 둥근 커다란 바닥돌 위에 그보다 작고 둥근 웃돌을 옆으로 세워 얹어 아래위가 맞닿아 돌아가게 만들어져 있다.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상사창동 연자마는 1930년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웃돌에는 나무로 만든 사각형 방아틀이 부착되어 있는데, 이 방아틀을 소나 말이 끌면서 방아를 찧는다. 마을에서 공동으로 사용해온 것으로, 오늘날까지도 원형 상태로 잘 보존되어 있어 하남의 옛 활상을 엿볼 수 있다. 옛날 하남사람들이 가을걷이를 하고 이곳에 모여 곡물을 빻으며 이야기를 나눴을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보기는 어렵지 않다. 연자마는 1991년에 경기도문화재자료 제82호로 지정되었다.

 


남한산 법화사지 및 부도
법화사지는 남한산성 북문 근처의 법화골 벌봉 아래에
자리잡고 있는 절터이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 태종의 매부이자
중국 법화둔 출신으로 ‘법화장군’이라 불린 양고리 장군이
조선의 원두표 장군의 계략으로 이곳에서 전사하였는데, 훗날
청나라의 태종이 그를 추모하기 위해 이곳에 ‘법화사’라는
절을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절터에는 여러 건물터와
불상, 석탑조각, 기와조각 등이 흩어져 있다. 비록 터만
남아있긴 하지만 남아있는 여러 유물과 건물터는 조선 후기
당시의 절터 구조와 건축, 조각미술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어 1994년에 경기도문화재자료 제86호로 지정되었다.
절터 아래쪽에는 세 개의 부도가 남아있다. 부도란 승려의
무덤으로 승려의 사리나 유골을 봉안한 것이다. 가운데 승탑의
탑신에는 ‘평원당 선백대사(平源堂善佰大師)’, 받침돌에는
‘매운당(梅雲堂)’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지만 그 이름들이
누구를 뜻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용당허리 위례둘레길 등산로 입구
100번 버스 종점인 법화골에 위치한 용당허리 입구를 통하면 위례둘레길을 걸을 수 있는 등산로로 진입할 수 있다. 용당허리는 남한산성 줄기가 길게 늘어선 모습이 용의 허리처럼 보인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정말로 구불구불한 능선은 꿈틀대는 용의 모습 같다. 위례둘레길은 하남시청에서 샘재와 남한산성(벌봉), 금암산과 이성산성을 거쳐 덕풍골에 이르기까지 하남시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39.7㎞의 구간이다. 이 등산로는 험하지 않으면서도 한적하고 조용한 것이 특징으로, 봄에는 진달래꽃이 흐드러지고 가을에는 단풍으로 물드는 아름다운 길이다. 위례둘레길을 걸으면 하남 위례성의 궁 안 지역을 둘러싼 산수를 감상하며 하남시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볼 수 있다.

2020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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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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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2024.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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