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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
코로나19와 우리의 도전
정리 정해원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코로나19 등 바이러스 창궐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다. 인간이 생태계를 파괴하고 자꾸 자연을 침범해 들어가니 야생동물들의 세계에 있던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옮겨오고 있는 거다. 과학자들이 많은 ‘나는’ 동물들이 왜 야행성으로 변했을까를 추적해보니 우리 인간이 낮에 돌아다니니까 할 수 없이 야행성이 되었다고 한다. 기후변화도 영향이 크다. 박쥐들이 계속해서 온대 지방으로 올라오고 있다. 코로나19는 애당초 근절이라는 것 자체가 잘못된 생각이다. 백신은 늘 뒷북을 칠 수밖에 없고 화학백신보다 더 좋은 백신은 사회적 거리 두기와 같은 ‘행동백신’과 자연 생태계를 보존하는 ‘생태백신’이다.
홍기빈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장
코로나19는 유럽에서 14세기에 있었던 흑사병에 비교된다. 충격이 크고 비극적이라는 점에서, 또 문명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뒤바꿀 사건이라는 점에서 같게 보고 있다. 그들은 코로나19로 인해서 구조적인 차원의 변화를 느끼고 있다. 지구화, 도시화, 금융화, 생태적 위기 이 네가지는 지난 40년 동안 사실 인류 역사에 한 번도 없었던 일들이다. 과거 일상으로 복귀? 그래선 안 되고 그럴 수도 없다. 성찰 없이 맞는 미래는 파국을 불러올 것이다. 돈을 써서 실업자들 중 일자리를 원하는 모든 사람을 국가가 고용해야 한다. 연간 30조~40조면 실업자들을 다 고용할 수 있다. 이걸 고용보장제라고 하는데 고용주들이 기본 최저임금에다가 조금만 돈을 더 주면 고용을 할 수가 있으니까 노동시장을 해치지 않는다. 굉장히 획기적인 아이디어인데 이것을 할 만한 용기와 대담성을 가지고 있느냐 그게 시험대에 올랐다고 본다. 사람과 사회와 자연의 좋은 삶이라는 건 무한한 경제성장이 아니다. 새로운 형태의 기업들도 많이 나올 수 있도록 우리가 머리를 같이 맞대고 이제부터 만들어 나가야 된다.
장하준 캠브리지대 경제학 교수
코로나19의 위기를 주객이 전도된 기존 경제체제를 정상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목표는 국민의 안전과 건강 그리고 복지다. 그걸 위해서 성장하는 것일 뿐이다. 한국의 코로나19 대응은 훌륭했고 사람들이 '무엇이 정말 중요한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번 기회에 그 가치를 재정립하는 게 필요하다. 성장보다 생명, 공공, 복지가 코로나19 이후의 경제 패러다임이다. 2008년 국제금융위기 이후에 근본적인 경제개혁을 했어야 했는데 그걸 안 하고 금리인하, 양적 팽창 등 억지로 경기를 부양해서 금융시장에 거품이 잔뜩 끼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또 이런 일이 터졌으니, 2008년은 물론이고 1929년 대공황 때보다도 더한 위기가 올 수 있다. 미국의 경우 지난 3주 동안 늘어난 실업자가 거의 20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우리나라는 자영업자 비율이 굉장히 높고 지금 가장 타격을 받는 게 서비스 업종이다. 이들에 대한 지원이 아주 시급하다. 지금 소액의 재난지원금을 주는 식인데 더 과감해야 돈을 써야한다. 자영업자들을 보호하는 게 방역 정책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
코로나19는 적정한 삶, 적정한 기술과 적정한 행복감이 어디인지 찾아가는 계기가 되고 있다. 자원은 한정돼 있다. 서로 다른 문명이 공존하려면 적정한 삶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우리를 잘 지킬 수 있는 최대한의 경쟁력이자 무기가 오히려 공존력이고 적정한 행복을 추구하는 그 마음이라고 보면 된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인정 투쟁에서 벗어나면서 어떤 단어가 많이 사라졌는데 바로 ‘벤치마킹’이라는 단어다. 벤치마킹이라는 게 남의 거 가져와서 해 보고 베낀다는 건데, 벤치마킹이 사라졌다는 건 내부의 동력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거다. 그래서 이번 코로나19 방역에서 다른 나라보다 뭘 잘했다는 개념이 아니라 우리만 가지고 있는 힘이 뭘까 생각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 사회학자
코로나19 대응으로 국가주의와 권위주의가 확산되었다. 울리히 벡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서구 민주주의사회조차도 국가적 위기에 닥치면 권위주의적, 국수주의적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농후하다. 우리한테는 권위주의 유혹을 뿌리칠 모델이 있는데, 바로 시민 참여형 공동체주의다. 한국에는 사실 서양에 못지않게 굉장히 시민 참여적인 전통과 공동체 지향적인 문화가 살아있다. 국가, 정부의 결정에 의해서 모든 사람이 일괄적으로 동시에 같은 모델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사회 안에 있는 여러 잠재력을 발굴해서 어느 정도 자율성을 가지고 시도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어떤 공동의 문제를 해결해 가는 데 있어서 매개 역할을 통해서 협치적으로 풀어나가야 한다. 협치는 단박에 가능한 것이 아니다. 다양한 가능성들이 밑으로부터 올라오는 것을 허용하고 학습을 통해서 서로 배워가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김누리 중앙대 교수, 한독문화연구소 소장
코로나19 사태로 미국의 민낯이 드러났다. 한국은 사실은 전 세계에서 가장 미국화가 심한 나라로 과잉미국화, 총체적 미국화가 돼 있다. 정치도 유럽은 대체로 다당제, 내각제인데 우리는 보수 양당제와 비슷한 형태이다. 성장지상주의는 오래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지구 생태계 자체의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인식과 담론이 공론장을 통해 더 활발히 이루어져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자본주의에 대한 새로운 성찰이 필요하다. 자본주의는 두 가지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는데 한국에서 논의가 잘 안 되고 있다. 첫 번째, 자본주의는 그냥 풀어놓으면 인간을 잡아먹는다. 소위 야수자본주의라고 불린다. 자유시장경제를 지지한다는 자들이 과잉 대표되어 있는 곳이 한국 의회이고 그래서 실업과 불평등이 이렇게 심한 거다. 두 번째 자본주의의 문제는 무계획성, 보통 학자들은 과잉생산 자본주의라고 한다. 자본주의는 매우 효율적인 체제이기는 한데 중단을 시킬 수가 없다. 생산을 중단하는 순간 넘어지는 자전거에 많이 비유된다. 수요가 없는데, 불필요한 데도 계속 생산을 해야 한다. 모든 생산은 자연의 변형 내지 파괴를 가져온다. 지금과 같은 형태로 자본주의가 작동한다면 22세기는 오지 않을 것이다. 폐기하거나 아니면 자본주의를 인간화해야 된다.
* 더 자세한 내용은 5월말 출간된 책 「코로나 사피엔스」 또는 유튜브 채널 CBS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서 ‘코로나19, 신인류시대’를 검색하면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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