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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최준석 건축사(나우랩건축사사무소 대표)
세계가 주목하는 K컬처의 상징,
국립중앙박물관
2025년 연말 영국의 권위 있는 미술 매체 '아트뉴스페이퍼'가
2025년 세계 박물관 관람객 순위를 발표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총 650만 7,483명을 기록했는데 이는 루브르박물관, 바티칸박물관에 이은 세계 3위다.
대영박물관과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4, 5위를 차지했으니
그야말로 세계 최정상급 박물관으로 공인받은 셈이다.
놀라운 것은 관람객 증가 속도다. 2024년 380만 명에서 2025년 650만 명으로 70% 이상 급증했다.
국립중앙박물관엔 어떤 건축적, 공간적 힘이 숨어 있길래 국내외
관람객들에게 서울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공간 중 하나로 자리매김한 걸까.
풍경으로서의 박물관, 공원으로서의 박물관
루브르박물관은 왕궁을 개조한 건물에서 시작했고, 대영박물관은 제국주의 시대의 전리품 창고에서 출발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역시 패권국의 문화적 힘을 상징하는 기념비적 건물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서구의 박물관들은 공통적으로 화려하고 거대한 외관을 통해 관람객에게 권위를 과시하며 ‘안으로 들어와 경배하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하지만 국립중앙박물관은 조금 결을 달리하는 느낌이다.
박물관 자체의 위세보다는 서울이라는 도시, 건물이 놓인 지세와 환경을 거스르지 않고 무심하게 놓인 성곽을 연상시킨달까. 간결한 직방형은 힘이 느껴지고 서울의 이미지와 꽤 잘 어울린다.
건물의 실제 크기는 꽤 큰 규모라 할 수 있지만 압도적이거나 위압적이지는 않다.
거대한 건물 한가운데가 텅 비워진 과감한 보이드(Void)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건축가의 의도가 분명한 건물 진입부 열린 광장 너머로 남산과 N서울타워가 한 폭의 산수화처럼 걸리는 풍경은 세계의 어떤 박물관도 갖지 못한 국립중앙박물관의 상징적 시퀀스다.
이는 건축물이 풍경을 막는 벽이 아니라 스스로 풍경의 액자가 되어 박물관 안으로 도시를 적극적으로 투영하는 차경(借景) 그 자체임을 보여준다.
요란하지 않으면서도 묵직하고, 뒤로 물러나면서도 품위 있는 박물관을 위한 세심한 설계 감각이 건축가의 디자인 철학에 내재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또한, 박물관 주변을 둘러싼 외부 공간의 풍요로움 역시관람객의 즐거움을 배가시키는 요소다.
남산의 녹지축을 수용한 거울못, 야외 정원, 산책길 등으로 이어지는 수변공간은 박물관을 단순한 건물이 아닌 하나의 완결된 문화 공원의 개념으로 확장시킨다.
유물 관람이 아니더라도 박물관을 찾는 이유는 다양하다. 박물관 주변을 걷고 산책하는 것으로도 문화적 향유와 정서적 공감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외부와 대비되는 내향적 침묵의 공간
열린 마당은 박물관의 출입 공간으로 내외부의 중간에 놓여 있다.
한옥의 대청마루처럼 지붕은 있으나 벽이 없는 공간으로, 바람과 풍경이 통하는 관람 동선의 시작점이자 박물관 주변의 자연경관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내부로 들어서면 반전의 미학이 시작된다. 거대한 공간으로 실내의 중앙을 관통하는 ’역사의 길’은 3층까지 시원
하게 뚫린 중정형 복도로 자연광이 천창을 통해 쏟아져 내린다.
이는 마치 유럽 도시 중심부에 있을 법한 아케이드를 실내로 옮겨놓은 듯한 밝고 활기찬 공간으로 각 전시실로 연결되는 실내의 광장 역할을 한다.
유물이 놓여 있는 각 전시실은 관람 효과를 높이기 위해 최소한의 인테리어를 적용한 것이 특징이다.
화려함보다는 관람에서 혼선을 빚지 않도록 유기적인 동선 위주의 배치가 눈에 띈다.
돋보이는 공간적 정점은 단연 ‘사유의 방’이다.
건축가 최욱이 설계한 이 전시 공간은 길이 24m의 휘어진 중형 공간에 국보 반가사유상 두 점이 놓여 있는 흑색의 공간으로 조명, 바닥 기울기, 벽면 질감까지 오직 두 존엄한 상(像)과의 대면만을 위해 설계되었다.
다소 소란스러운 분위기에서 머물던 관람객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 시공간이 멈춘 듯한 낮고 절대적 고요를 만나게 된다.
한편, 불교조각실 가장 안쪽 방에는 국내에 현존하는 가장 큰 철불이 있으니 사유의 방과 함께 둘러보길 권한다.
높이 2.81미터, 무게 6.2톤에 이르는 보물 제322호 ‘철조석가여래좌상’으로, 하사창동 절터에 묻힌 채 발견됐다.
한쪽 어깨를 드러낸 법의와 부채꼴 주름, 다리 위에 올린 손 모양은 석굴암본존불을 연상시키며, 고려 초기 조각의 특징을 보여준다.
박물관은 흔히 과거 유물을 보관하는 지루한 창고로 오해받곤 한다.
하지만 스스로 풍경을 담는 액자가 되고, 누구나 거닐 수 있는 공원이 되고, 내면을 마주하는 고요한 안식처가 됨으로써 전혀 다른 장소가 될 수도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진정한 가치는 비워냄으로써 더 많은 도시의 풍경을 채워넣은 건축적 역설에 있다.
과거를 가두어 두는 창고에 머물지 않고, 오늘을 사는 우리가 언제든 찾아와 거닐고 교감할 수 있는 문화 공원이 된 것이다.
앞으로도 오랜 시간 K-컬처를 상징하는 다정하고 품격 있는 장소가 되어주길 기대한다

국립중앙박물관 건축 포인트
1. 남산이 보이는 차경과 열린 마당
성곽 같은 건물 사이로 남산이 보이고 반대편에 거대한 연못이 펼쳐지는 풍경은 국립중앙박물관의 대표적 시퀀스다.
2. 사유의 방
어둠과 침묵 속에서 반가사유상과 직접 대면하는 순간은 세계 어떤 박물관에서도 볼 수 없는 영적인 감흥을 느낄 수 있다.
3. 거울못에 비친 박물관
전시 관람 전후로 거울못을 한 바퀴 걸어보자. 물에 비친 박물관, 계절마다 달라지는 풍경의 변화는 그 자체로 하나의 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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