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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밖 산책
도시 개발의 역사가 흐르는 청계천

2022-11-22

하남선 타고 어디로 갈까?

도시 개발의 역사가 흐르는

청계천

 

서울 관광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청계천은 사람들에게 여유를 주는 아름다운 산책로이자

살아있는 도시 개발의 역사이다. 조선 시대부터 지금까지 청계천이 흘러온 시간을 되짚어 보자.

글 임혜선

 

 

 

 

청계천 개발은 조선 태종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양은 배수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었다. 

한양을 둘러싼 낙산, 인왕산, 남산, 북악산 등 네 개의 산에서 내려온 물이 

한강으로 바로 빠지지 못하고 낮은 도심으로 흘러 각종 생활오수가 고일 뿐 아니라 

홍수가 심한 시기에는 물이 넘쳐 민가가 침수됐기 때문이다. 

이에 태종은 도심을 관통하는 ‘개천(開川)’이 필요하다 여겨 자연 상태에 있던 

하천의 바닥을 쳐내서 넓히고, 양안에 둑을 쌓는 등 몇 차례에 걸친 정비로 하천의 모습을 만들어갔다. 

이 개천이 바로 지금의 청계천이다.

태종을 비롯해 세종, 영조 등 조선 시대의 왕들이 지속적으로 개천 공사를 진행했지만,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청계천은 다시금 쓰레기와 오수로 오염되고 말았다.

1960년대까지 여러 번의 복개 작업이 진행됐던 청계천은 1971년, 광교에서 마장동에 이르는 

청계고가도로가 건설되면서 그 자취를 감추게 된다. 

물이 흐르던 자리에 도로가 들어서고 자동차가 달리게 되면서 불결하다 여겨졌던 청계천은 

근대화의 상징으로 우뚝 서게 됐다.

 

 

 

 

 

 

그러나 청계고가도로의 시간도 그리 길지는 못했다. 

청계고가도로가 건설되고 30여 년이 지난 1990년대, 노후화된 청계고가도로의 안전 문제가 대두된 것이다.

여러 전문가와 시민들의 의견에 귀 기울인 서울시는 붕괴 위험이 높고 도시 미관을 

해치는 고가도로를 철거한 뒤, 물이 흐르는 청계천을 복원하기 시작했다. 

시민들에게 휴식공간을 제공하면서 새로운 관광 명소를 만들고자 한 것이다.

2005년, 지금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 청계천은 재개장 이후 10년 만에 1억 9천만 명의 

내외국인이 방문할 정도로 서울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가 되었다. 

오래된 고가도로는 사라지고 실개천을 따라 도심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산책로가 조성되면서 

절로 사람들의 발길을 모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서울의 대기 환경 개선, 열섬 현상 완화, 홍수 예방 등 환경적인 측면에서도 

양한 긍정적인 효과를 보였다.

 

 

 

 

 

청계천은 그 규모는 작지만 접근성이 좋아 서울에서 열리는 다양한 축제의 무대로도 사랑받고 있다. 

매년 연말이 되면 서울의 중심을 아름다운 빛으로 물들이는 ‘서울빛초롱축제’도 그중 하나다. 

올해는 광화문광장 재개장을 기념해 광화문광장에서 열릴 예정이지만, 

그동안은 청계천을 주 무대로 우리나라와 세계 각국의 문화 및 캐릭터를 주제로 만든 

다양한 조형물이 전시되어 연말의 설렘을 더했다. 

지난 10월에는 청계천 일대에서 ‘서울세계도시문화축제’가 열리기도 했다.

백성이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태종이 첫 삽을 떴던 청계천이 이제는 바쁜 일상 속에서 

여유를 찾고 문화를 향유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공간이 되었다.

 

 

 

2022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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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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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2024.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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