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별보기
글 정지연
각박한 세상에 옛 감성이 주는 위로
‘할매니얼’에 빠진 젊은이들
인스타 감성 폴폴 풍기는 카페에서 할매 입맛스러운 메뉴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SNS에는 할매니얼 관련 해시태그(#)가 줄을 잇는다.
바로 2030세대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은 ‘할매니얼’ 현상이다.
어려도 한참 어린 젊은 세대들은 어떻게 할매 취향에 빠지게 됐을까?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 영역까지 확대되고 있는 할매니얼 열풍에 대해 알아본다.

할매니얼의 중심에 있는 ‘시니어 인플루언서들’
할머니 감성이 젊은 세대 사이에서 인기다. 오죽하면 ‘할매니얼’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 할매니얼은 할머니의 사
투리인 ‘할매’와 ‘밀레니얼 세대’를 합친 말로, 할머니 감성을 좋아하고 관심 갖는 젊은 세대를 뜻한다. 중장년층 입맛으로 여겨지던 흑임자와 쑥, 인절미 등을 이용해 만든 음식을 즐기는 ‘할매입맛’, 화려한 꽃무늬 가디건과 니트 조끼처럼 막 할머니 옷장에서 꺼낸 듯한 옷들을 매치해 입는 ‘할미룩(그래니룩)’ 등이 대표적인 할매니얼 현상이다.
사실 뉴트로와 복고는 이미 오래 전부터 유용한 마케팅 수단 중 하나로 여겨져 왔다. 옛 감성이 기성세대에게는 추억과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그 시절을 모르는 젊은 세대에겐 ‘신선함’과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래 부는 할매니얼 열풍은 이전의 복고 유행과는 조금 다르다. 상품이나 콘텐츠보다 ‘사람’이 부각된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할매니얼의 중심에 있는 시니어 인플루언서들이 바로 그 주인공. 대표적인 인물로는 구독자 133만 명을 보유한 박막례 유튜버를 꼽을 수 있다. 구수하고 거침없는 입담으로 유명한 막례 씨는 지난 10월 구글코리아와 유튜브가 선정한 한국 대표 크리에이터 50인에 오를 만큼 영향력이 대단하다. 90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거느린 할머니 유튜버 밀라논나(장명숙) 역시 MZ세대의 멘토로 활약하고 있다. 이외에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패션모델에 도전한 김칠두 할아버지, ‘몸짱 할머니’로 유명한 시니어 보디빌더 임종소 씨등도 할매니얼 열풍을 이끌고 있다. 멋진 어른들을 따르는 젊은 세대가 많아지면서 젊고 핫한 모델 대신 따뜻하고 편한 이미지의 시니어 모델을 기용하는 기업도 점점 늘고 있다. 비단 식품, 패션에서만 아니라 IT, 유통 등 다양한 사업 분야로 분위기가 확대되는 추세다.
세대 간의 소통 창구 열어준 ‘할매니얼’
할매니얼 열풍에 대해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한 방송 인터뷰에서 젊은 세대가 4050세대의 ‘꼰대 문화’에 대한 반작용으로 그 윗세대에 호감을 느낀다고 분석했다. MZ세대에게 부모님이나 직장 상사 등으로 직접 부딪히는 4050세대는 ‘꼰대’로 느껴질 수 있지만, 노년층은 직접 부딪히는 연령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 인생의 경험을 묻고 의논, 의존하고 싶었던 젊은 세대의 욕구가 ‘할매니얼’ 열풍을 통해 드러난 것이라고도 해석했다. 청년 세대의 삶이 그만큼 기댈 데 없이 불안하고 불확실하다는 방증이겠다.
다행인 점은 할매니얼 열풍을 통해 세대 간의 벽이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직간접적으로 세대 간 교류를경험하면서 사회적 단절을 넘어 다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시니어 인플루언서들의 따뜻하고 솔직한 소통 방식은 전 세대에 걸쳐 귀감이 된다. 가령, 막례 씨가 ‘헤어져 우울한 이들을 위해’라는 제목으로 말없이 춤추는 모습을 담은 영상에는 “말없이 내 편이 되어 주는 것 같아 위로받는다”라는 댓글이 달리고, 하루를 정성껏 마무리하는 루틴을 보여준 밀라논나의 영상에는 “선생님을 보면 나이 드는 게 나쁘지 않은 것 같다”라는 댓글이 달린다. 노인에 대한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은 채 주체적으로 자기 삶을 살고, 세심하게 남을 배려하는 시니어 인플루언서들의 모습이 외롭고 불안한 청년들에게 힘이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소통법은 다른 세대 간에도 적용될 수 있다. 중·장년 세대에게 “젊은이들과 할 얘기가 없으면 차라리 날씨 이야기를 하라”고 한 밀라논나의 조언처럼 말처럼, 그리 대단한 능력이 필요한 게 아닐지 모른다. 각박한 세상 속에 따뜻한 정이 그리운 젊은 세대를 품는 시니어 인플루언서들의 활약은 비단 2030세대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에 건강하고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 기사수 1641
- 조회수 4989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