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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선영, 참고도서 『빼기의 여행』
진정한 쉼을 즐기려는 이들에게
빼기의 여행
여행을 떠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쉼’을 위해서가 아닐까.
그러나 막상 여행에서 피로만 떠안고 돌아오는 일이 다반사다. 홀가분한 여행을 위한 빼기의 기술을 알려준다.

낯선 시공간을 오롯이 즐기는 마음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은 인류를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 즉 여행하는 인간으로 정의했다. 앉은 자리에서 모든 정보에 접속 가능한 현대에 이르러서도 ‘오버투어리즘’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여행 인구는 멈출 기색 없이 증가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잠시, 멈춤’도 있었지만 ‘방구석 여행’이 생겨날 정도로 사람들은 끊임없이 여행을 갈망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일상의 장소를 벗어나 생생하고 색다른 경험을 하길 바라는 마음, 여러 가지 일들로 번잡해진 머리를 비우고 먼 곳에서 홀로 휴식을 취하고픈 마음은 우리를 ‘여행하는 인간’으로 만든다. 사실 여행은 그냥 그 단어가 주는 의미만으로도 우리를 설레게 한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장소, 미지의 공간, 낯선 사람들, 가려진 건물의 뒤편은 우리의 호기심을 늘 자극하듯 여행은 그렇게 우리를 궁금하고 설레게 만드는 일임이 틀림없다.
여행을 두고 흔히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이라고 말한다. 소설가 김영하는 산문집 『여행의 이유』에서 “비행기가 활주로를 박차고 인천공항을 이륙하는 순간마다 삶에 대한 통제력을 회복하는 기분”이라고 썼다. 어지럽고 복잡하고 무질서한 일상에서 멀어지는 순간, 삶이 온전히 나의 것이라는 내면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여행지에 도착하면 우리는 설렘보다 조급함이, 내면의 소리보다 바깥 풍경을 보기에 급급하다. 간신히 얻어낸 휴가를 최대한 알차게 써야 한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분주한 것이다. 수백 개의 해시태그를 뒤지며 맛집, 관광지를 클리어해가다 보면 여행을 온 것인지 미션 수행을 하러 온 것인지 헷갈리게 된다. 이런 여행자에게 가장 필요한 건 더 많이 보고 느끼려는 강박을 내려놓고, 낯선 시공간을 오롯이 즐기는 ‘빼기’의 마음이다. 구글 맵에 빼곡히 표시해 놓은 관광지 하나를 빼고, 맛집 하나를 빼는 대신 숙소 주변의 작은 골목을 걸으며 발견하는 소소한 재미를 더하다 보면 여행은 이미 그것만으로도 충분 하다. 촘촘하게 짜놓은 여행 계획을 느슨하게 풀어놓을 때 여행지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나만을 위한 특별한 공간으로 바뀐다. 그제야 진정한 쉼을 즐기러 온 ‘나’를 찾게 되는 것이다.
뺀 자리에 채워지는 여행의 기억
『빼기의 여행』 송은정 저자는 여행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는 ‘카버의 법칙’을 떠올리며 여유를 부려보라고 권한다. 카버의 법칙이란 “미래를 위해 물건을 쌓아 두지 않고, 날마다 자신이 가진 가장 좋은 것을 다 써버리고서 더 좋은 것이 생기리라” 믿은 소설가 레이먼드 카버의 일상 습관이다. 저자는 카버의 법칙처럼 어떤 ‘목표’와 ‘목적’이 있는 여행 대신 야자수 아래서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근사한 레스토랑 대신 차 안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컵라면을 먹는 여행을 즐긴다고 한다. 그런 순간의 기억은 초콜릿처럼 강력해서 도시의 연이은 회의와 교통체증 사이에 하나씩 꺼내 보면 기운이 났다고. 저자의 말처럼 이동이 목적지를 향해 직선으로 달리는 행위라면, 여행은 목적지에 닿기까지 가능한 한 우회하려는 시도가 아닐까. 사실 여행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여행은 참 거창한데 있지 않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길을 잃은 골목에서, 버 스를 놓친 틈에 우연히 마주한 여행지의 풍경, 낯선 여행지에서 만난 다정한 사람들, 관광지 대신 우연히 걷다 발견한 아름다운 풍경… 그런 지극히 사소한 순간이 우리를 여행하게 하고, 갈망하게 하며, 그리워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엉망진창이었던 여행도 지나고 나면 추억이 되고 그리워지는 순간이 되는 것처럼, 그런 기억이 우리를 자꾸만 여행지로 옮겨놓는 것 같다. 그러니 더 많이 보고 느끼려는 강박을 내려놓고, 낯선 시공간을 오롯이 즐기는 ‘빼기’의 마음을 가져보길 바란다. 비우지 않으면 채울 수 없고, 버리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
‘당신에게 여행은 어떤 의미인가요?’ 하고 묻는다면 무엇이라 대답할 것인가. 거기서 여행은 출발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여행은 무언가를 많이 채워 오기보다 ‘빼기’의 마음으로 다녀오자.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을 소중한 기억들이 그 빈자리를 가득 채울 것이 분명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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