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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지연
경제적 자유, 그 이상의 삶
파이어족이 온다!

최근 MZ세대를 중심으로 조기 은퇴 바람이 불고 있다. 일명 ‘파이어족’이 늘고 있는 것이다.
경제적 자립(Financial Independence)과 조기 퇴직(Retire Early)의 첫 글자를 조합한 신조어인
파이어족은 말 그대로 경제적 자립을 통한 조기 은퇴를 꿈꾸는 사람들이다.
이제 갓 직장에 들어간 이들까지 30대 후반이나 늦어도 40대 초반에
직장 생활을 관두고 싶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금융 위기 속 피어난 ‘경제적 자립’에 대한 갈망
파이어족은 1990년대 미국에서 처음 등장해 2008년 금융 위기를 거치면서 급속히 퍼져갔다.
금융 위기 이후 이어진 경기 침체기에 사회생활을 시작한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에서
2000년대 초 사이에 태어난 세대)가 파이어 운동에 주목하면서 확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저성장 시대와 구조 조정, 준비 없이 은퇴해 어려움을 겪는 부모를 보면서 ‘경제적 자립’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독하게 절약하며 조기 은퇴 자금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집 크기를 줄이고 새 차 대신 중고차를 사고 외식이나 여행도 포기하며 돈을 저축하는 식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목표가 단순히 돈을 많이 모아 일에서 해방되는 것 자체만은 아니었다.
이들이 경제적 자립으로 진정 얻고자 한 것은 바로 ‘자유’. 『파이낸셜 프리덤』의 저자
그랜트 사바티어는 이를 두고 “파이어 달성은 반드시 일을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어떤 걸 할지 선택할 수 있는 자유, 기회”라고 말한다.
파이어족은 연간 생활비의 25배를 모으면 조기 은퇴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가령, 1년 생활비가 5,500만 원이라면, 13 억7,500만 원을 모아야 하는 셈이다.
미국의 작가 스콧 리킨스는 자신의 저서 『파이어족이 온다』에서 “13억 7,500만원을 부동산이나
주식에 투자해 연 5%의 수익(6,875만 원)을 낸다고 가정하면, 4%(5,500만 원) 정도만 생활비로 사용해도
물가 상승률과 시장 하락에 대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앞서 1999년 트리니티 대학 경제학과 교수들이
연구한 4% 법칙에 근거한 계산이다. 실제로 많은 미국의 파이어족이 매년 필요한 생활비를
4만 달러(약 4,400만 원)로 잡고, 100 만 달러(약 11억 원)를 목표 금액으로 삼고 있다.
자본주의 키즈에서 재테크 신흥 세력이 된 K파이어족
10여 년 전 미국에서 확산된 파이어 운동이 근래 한국에서 유행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는 K파이어족을 꿈꾸는 MZ 세대의 성장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이들은 어린 시절 IMF를 겪으며
자본주의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알게 된 세대다. 노동으로 버는 돈인 ‘근로소득’이 이자나 시세 차익 등으로
버는 ‘자본 소득’을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에도 익숙하다. 그렇다 보니 이전 세대들에 비해 직장에 거는 기대는
훨씬 적은 편이다. 지난 3월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가 국내 MZ세대 투자자 2,536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 조사에선 조기 은퇴를 꿈꾼다는 응답자가 무려 65.9%나 나왔다.
한국의 파이어족이 미국의 파이어족과 다른 점이라면 은퇴 후의 삶이 안정적인 수준을 넘어
풍족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그 영향으로 은퇴 자금을 마련하는 방법도 극단적 절약 보다는
적극적 투자를 선호한다. 최근 많은 20~30대가 위험 성향의 주식이나 암호화폐에 투자하거나
부동산 경매에 뛰어드는 경향이 그 일면이다.
하지만 파이어족에게 진짜 중요한 것은 은퇴 자금보다는 목표다. 조기 은퇴를 한 후 이루고 싶은
인생의 목표가 서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조기 은퇴를 하더라도 행복을 장담할 수 없다.
30대 후반에 조기 은퇴해 파이어족으로 살며 유튜브 채널 ‘파이어족-대퐈마TV’를 운영하고 있는
대퐈마 자매도 파이어족을 꿈꾸는 젊은 세대에게 “단순히 부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극단적으로
절약하기보다는 명확한 목표나 꿈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소비 습관을 돌아보고
경제적 자립 방법을 적극적으로 모색해간다면, 성공적인 파이어족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동시에 우리 사회는 질문해봐야 한다. 왜 젊은 세대가 서둘러 직장을 떠나고 싶어 하는지.
‘돈 때문에 혹사당하지 않을 권리’, ‘하기 싫은 일은 거절할 권리’, ‘나에게 가치 있는 일을 선택 할 권리’를
왜 은퇴 후에야 가능하다고 여기는지. 실제로 그렇진 않은지. 기성세대도 그저 멀찍이 서서 조기 은퇴를
유토피아적 발상으로 치부하기보단, 젊은 세대가 찾은 대안을 거울 삼아 한국 사회에 만연한 자본주의의 병폐를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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