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별보기
글 정지연
다양한 세상, 다중적 자아로!
2021년에도 지속되는 부캐 열풍
화면 밖으로 나온 부캐
다중인격적 성향과 페르소나를 한데 묶은 말인 ‘멀티 페르소나(multi persona)’.
이 멀티 페르소나가 현대인의 일상에 파고 들었다.
소비, 관계, 취향 등의 다양한 분야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 가장 쉽게 접하는 멀티 페르소나의 예는 바로 ‘부캐’.
부캐는 원래 게임상에서 시작된 용어로, 부캐릭터의 준말이다.
메인 캐릭터나 계정을 뜻하는 ‘본캐’ 외에 별도의 필요에 따라 새롭게 만든 캐릭터나 계정을 이른다.
가령 본캐가 최고 레벨을 달성하면 부캐를 만들어 새로운 도전을 한다거나,
메인 계정으로 하기엔 부담스러운 일탈을 부캐를 통해 시도한다.
이러한 부캐가 게임 밖으로 나와 무대에 등장한 것은 2018년부터다.
고무장갑 복면을 쓰고 악당을 저격한 마미손을 시작으로, 노동자들의 캐롤을 들고 나온 김다비,
관록 있는(?) 트로트계의 샛별 유산슬 등 다양한 부캐들이 등장해 인기를 끌었다.
특히 유재석은 MBC <놀면 뭐하니?>란 프로그램을 통해 유산슬 외에도 유고스타, 유르페우스,
유드레곤, 지미유 등 다양한 부캐를 선보이며, N차 도전을 이어하고 있다.
요즘은 이러한 부캐가 예능계를 넘어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트렌드로 확산되고 있다.
SNS에 여러 계정을 쓰며 각기 다른 정체성으로 소통하는 것은 흔한 일이 됐고,
다양한 취미를 통해 본래 직업 이외의 활동을 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부캐를 통해 키운 취미가 직업이 되는 하비프리너(Hobby-preneur), 호큐페이션(Hoccupation),
덕업일치 등 신조어가 계속 쏟아지고 있다.
또 다른 나를 통한 확장 유니버스
부캐의 인기는 본캐만으로는 살아가기 힘든 현실을 반영한다.
한결 같으면 도태될 만큼 변화무쌍하고 불확실해진 시대인 것이다.
이를 두고 『알터 에고 이펙트』의 저자 토드 허먼은 “변화가 많은 시대일수록
이에 탄력적으로 대응 가능한 대체 자아는 주요한 유능함의 척도가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부캐가 생계를 위한 무기인 것만은 아니다.
원래 인간의 내면에는 수많은 자아가 존재한다.
누구도하나의 정체성만 갖고 살진 않는다.
지난 세월, 복수의 정체성을 갖고도 맥락과 상관없이 똑같기를 요구받으며 살아왔던 것뿐이다.
부캐는 이런 우리에게 해방감을 줬다.
하나의 정체성에 갇히지 않고 내 안의 다양한 모습을 표현할 길이 되어준 까닭이다.
SNS의 부계정이 흔한 예다.
과거 직장 동료나 시가 식구와 SNS 친구맺기를 놓고 고민하던 이들은 이제 SNS 부계정을 활용한다.
카카오톡에선 상대에 따라 다른 프로필을 노출시킨다.
자신이 맺고 있는 관계에 따라 여러 정체성 중 하나를 꺼내 보여주는 식이다.
페이스북 CEO 마크 저커버그 역시 “부계정의 탄생은 SNS가 연결보다는 스스로를 자유롭게 표현하고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사적공간으로 바뀌어 가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부캐는 실패에 있어서도 자유롭다는 강점이 있다.
가령 유산슬이 사라져도 국민MC 유재석이 망하진 않는 것처럼, 부캐는 실패에 유연하다.
그렇기에 다양한 도전을 시도할 수 있다.
새로운 자아를 발견하는 쾌감, 부캐를 통한 도전에서 배우는 경험은 본캐에게도 긍정적 에너지를 준다.
어떤 이들은 이러한 부캐 현상을 보며 정체성의 혼란을 우려한다.
부캐 활동으로 여러 개의 직업을 가지게 된 N잡러들을 현실의 냉혹함에서만 바라본다.
하지만 부캐 현상은 이전의 생계형 ‘투잡’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이것은 확장이다. 하나의 정체성에 집착해 어떤 ‘부캐’가 ‘본캐’를 잘 보여줄 수 있는지 고민하기보단,
‘어떤 세계’가 지금 선택한 ‘부캐’에 잘 어울리는지를 선택하는 게 현명하다.
그렇게 각자의 유니버스를 확장해가면 된다.
바야흐로 부캐(부캐릭터)의 전성시대다.
과거 싸이월드에서 캐릭터를 꾸미던 MZ세대가 이제는 부캐를 통해 자아 실현을 하고 돈도 번다.
때론 부캐와 본캐의 역전 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부캐가 본캐의 정체성을 앞지르는 것이다.
이런 세상이 정상인 걸까? 위험하지 않을까?
일부 우려에도 멀티 페르소나, 부캐는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 됐다.
하나의 정체성에 갇히지 않고 또 다른 나를 발견해가는 부캐 현상의 의미를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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