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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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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궁동(春宮洞)

  • 춘궁동은 조선시대부터 일컬어 오던 춘장동(春長洞)의 춘자와 궁말(宮村)의 궁자를 합쳐 만든 명칭으로 상사창, 하사창, 항, 교산동을 관장하는 행정동명을 겸한다. 춘궁동은 궁안, 춘장, 버구리, 선산동의 자연부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 가. 상화울
    상화울은 이성산성 북쪽 기슭에 자리잡은 마을로 상화곡 (桑花谷)이라 하기도 하는데, 이 마을 주위가 뽕나무로 가려져 있다고 하여 상화울이라 하였다. 뽕나무가 유난히 많아 주로 잠업 농사를 짓는 마을이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마을 앞에 있는 산의 형태가 코끼리의 형상과 같다하여 코끼리 ‘상(象)', 어금니 ‘아(牙)'자를 붙여 상아울이라고 하는 말도 있다. 연안 이씨(延 安李氏)의 집성촌이다.
  • 나. 법화골
    병자호란 당시 청태종의 매부인 양고리가 우리나라 원두표 장군에게 패하여 전사하자 전쟁이 끝난 후 그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남한산성 북문밖에 암자를 지어 그 이름을 양고리(楊古里) 의 고향이름인 법화둔(法華屯)을 따서 법화암(法華巖)이라 붙여 부르게 되니 그 밑에 생긴 부락명도 자연 법화동, 법화골이라 부르게 되었다.
  • 다. 샘골
    법화골 아래쪽에 샘이 잘난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라. 중터골
    중촌(中村) 중문동이라고도 한다. 이 곳의 서당엔 위 아래 마을에서 와 공부를 하니 자연 가운데 말로 중문동(中文洞)이라 하였는데 그 말이 변형 중터말이 되었다.

하사창동(下司倉洞)

  • 상사창동의 대칭어이다. 역시 동부면의 사창리였다. 이 곳에 원래 사창(司倉)이 있었고 그 터의 주춧돌이나 대석들이 지금도 많이 산재해 있다. 일설에는 큰 절이 있었다고도 한다. 가운 데말, 되촌말, 벌말, 처골, 사리말, 아랫말등의 자연부락이 있다.
  • 가. 가운데말
    하사창동에서 한 중간에 있는 부락이다.
  • 나. 되촌말
    지형이 곡식을 헤는 되처럼 생겼다하여 부르는 이름이다.
  • 다. 벌말
    옛날에 철불이 있었기 때문에 부처골이라 한다. 현대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철불도 이 부락의 것으로 병자호란 때 청나라 군사들이 끌고 가다가 개성에 버리고 간 것으로 6.25때 국군 들이 다시 경복궁으로 끌고 왔다. 이 와중에 팔이 부러졌는데 그 좌대(座坮)가 부처골에 있었으나 고압선 철탑공사때 없어졌다.
  • 라. 사리말
    이 부락도 석불과 사리탑이 많았었기 때문에 사리말이라 하나 일제 때 일본사람들이 이 일대의 유물들을 모조리 가지고 가 지금은 형태도 없다.
  • 마. 아랫말
    하사창동에서 가장 아래에 있는 마을이다.
  • 바. 월남촌
    월남촌은 근래에 형성된 마을로 당시 마을의 지주 (地主)들이 자주 싸움을 하였다 하여 월남촌으로 불렸다는 말도 있고, 월남파병을 했던 사람들이 많이 있었으며, 그 사람들이 자주 싸 움을 했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기도 한다.

교산동(校山洞)

  • 춘궁동내의 법정동으로 향교의 교(校)자와 객산의 산(山)자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교산동은 향교말과 안샘재의 자연부락이 형성되어 있다.
  • 가. 안샘재
    샘재의 안쪽 부락이다.
  • 나. 향교말
    향교가 있는 마을이란 뜻이다.

항동(項洞)

  • 행정동인 춘궁동에 속한 법정동명으로 고읍에서 남한산성에 오르는 길목(項)에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나무길과 왜골, 황골의 자연부락이 있다
  • 가. 나무길
    샘재의 안쪽 부락이다.
  • 나. 왜골
    오야곡이라고도 한다. 오동나무가 많아 오야곡(俉野谷)이라 하였다 하나 이는 와전된 듯 하고, 이 곳에 사는 윤씨들의 선조묘비나 족보에 보면 이 곳을 와야곡(瓦野谷) 즉, 기와를 곱던 골짜기였다. 그 와야곡이 → 왜골로 변한 것은 지금도 이 일대에서는 기와무더기가 발견된다.
  • 다. 황골
    황토골이라고도 하는데 지질이 황토이기도 하지만 가을에 이 곳 전답이 곡식이 익으면 경사면이라 아침햇살이 비치면 황금빛으로 아름답게 보여 붙여진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