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명유래

> 행정복지센터 소개 > 신장2동 > 지명유래

신장동 (新長洞) 지명유래

신장동에서 제일 오래된 부락은 장예말(長禮村)이다. 장예말은 들판의 한가운데 있고 덕풍천의 보가 설치되어 비교적 기름진 농토가 있어 부농들이 살아 그 근처 마을 사람들이 쌀을 많이 꾸어 먹었고 이것을 장리(長利 ; 그해 농사를 지어 갚음)로 갚았는데 이 쌀을 장리쌀 또는 장예말쌀이라 하고 장예쌀을 주는 마을이라 해서 붙은 이름이다. 이 마을 밖에 신작로(43번 국도)가 뚫리고 이것이 신장예(新長禮)마을이다. 그 지명이 간략하게 붙여져서 신장이라 부르게 된 것이고 이것이 법정지명으로 굳어진 것이다. 신장동은 부락이 자꾸 늘어나 장예말과 석바대, 장터 말을 합쳐서 행정구역 신장1동이 되고 신장2동은 신평리, 더우개(新亭), 아랫말, 동촌말, 개울건너말 등의 자연부락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현재에는 더우개(新亭) 일부분과 동촌말은 아파트 단지로 바뀌었다.

더우개

한강변에 있는 마을로 수운시대에 물물교환을 하던 포구가 있었는데 이 포구 이름을 덕오포(덕오포)라 하였다. 포(포)의 우리말이 “개”를 붙여 “덕오개”라 하였으니 이 말이 변하여 “더우개”라 하게 되었다.

신정(新亭)

더우개 부락을 일명 신정이라고도 한다. 이 이름은 그 근거가 구전이나 속어에 의한 것이 아니고 이 부락을 형성한 사람들이 당정섬(당정)에 살다가 1925년 을축년 대홍수때 이곳으로 이주한 배천조씨 (백천조씨)들의 주축을 이룬다. 당정섬에서 살다 온 사람들이 새로운 당정을 이루었다 하여 신정이라 한 것이다.

신평리(新坪里)

새뜰이라고도 한다. 한강변에 있는 마을로 원래 는 억새풀로 덮인 황무지였다가 수리조합이 생김으로 옥토가 되어 새뜰이란 이름이 붙었고 당정리 사람들이 출입농을 하던 농토가 있는 곳으로 한집 두집 이주하여 생긴 부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