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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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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재

샘재마을은 샘이 있는 고개 너머에 있는 마을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안 샘재와 바깥 샘재마을이 있다. 동경주 고개를 넘어오면 마을이 나오는데 이 마을을 바깥샘재 마을이라 하고, 안샘재 마을은 샘재 안쪽에 있는 마을로서 교산동을 가리 킨다. 함평 이씨 (咸平李氏)의 집성촌이기도 하다.

동경주

경기도에서 발간한『지명유래집』에는 동쪽에서 제일 큰 고을이라서 동경주로 불렀다고 하고, 『하남의 역사』에서는 동강난 쥐봉으로부터 동강난쥐→동강쥐→동경주 로 변화하였다고 쓰고 있다. 어떤 지도에는 동정두로 표기된 것도 있는데, 『함평 이씨 포장공파보(捕將公派譜)』에는 이곳을 동정(東亭)에 머물렀다는 기록이 있었다. 지형으로 볼 때 객산 자락의 끝부분에 위치 한다.

선린촌(善隣村)

동경주에서 작은 야산을 돌아 내려가면 선린촌교회가 나오는데, 그 일 대의 마을을 선린촌이라 한다. 강동구 길동에서 양계를 하며 살던 실향민들이 도시계획에 밀려 이곳으로 이주하여 마을을 형성하였다.

봉학골

선린촌을 지나 광주방향으로 약 500m 정도 가면 작은 마을이 나타나는데 이 마을이 봉학골이다. 산골짜기의 형세가 학이 날개를 편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하여 봉학골 이라 불렀다. 봉학동 (鳳鶴洞)이라 표기된 묘비도 있고, 『함평 이씨 포장공파 보』에도 봉 학동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전설에 의하면, 지금의 상불사 아래쪽에 어느 부자집의 묘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 묘자리는 좌청룡 우백호가 완연하고 학이 날개를 편 형상의 지세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 묘터는 아들들은 잘되고 딸들은 잘 살지 못하는 터였다고 한다. 출가한 딸들은 살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아들 들은 더욱 부자가 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 한 딸들이 여기 저기 알아보니 아버지의 묘자리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딸들은 어머니에게 아버지의 묘자 리를 이장(移葬)하도록 요구하였으며 아들들과 몇차례 상의한 끝에 아버지의 묘를 이장하게 되었는데, 이장을 하기 위해 묘를 파니 학이 날아 갔다고 한다. 아버지의 묘를 이장하고 난 뒤 아들들은 점점 가세가 기울었고 딸들은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